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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천만 영화 후기 (실제 인물들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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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서울의 봄'이 개봉 33일 만에 천만 영화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범죄도시3'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천만 영화이고, 천만 영화는 2019년 '기생충' 이후 '범죄도시3'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특히 황정민은 '국제시장(2014)' '베테랑(2015)' '서울의 봄'까지 3번째 천만 타이틀을 거머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우성에게는 1994년 데뷔 이래, 첫 천만 영화라고 합니다. 

 

의미 있는 작품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더없이 기쁩니다. 줄거리에 대해서는 잘 아실 테고, 오늘은 인물들 위주로 실존 인물들이 사건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상세하게 전달해 드려 보겠습니다. 

 

 

● 감독 : 김성수

출연진 : 황정민(전두광 역), 정우성(이태신 역), 이성민(참모총장 정상호 역), 박해준(9사단장 노태건 역), 김성균(헌병감 김준엽 역), 김의성(국방장관역), 정동환(대통령 최한규역) 

상영일정 : 2017년 1월 17일 공개

상영시간 : 106분 쿠키 없음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 군사반란 발생했던 그날을 긴장감 있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미 아는 줄거리와 인물들이었는데요, 연출과 각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력이 더 몰입도 있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전두환은 당시 중앙정보부가 무력화되어 사실상 제대로 기능하는 유일한 정보기관인 국군보안사령부로 모든 정보력이 집중된 상황에서 전두광이 10.26 사건을 수사하는 합동수사본부장이 되어 합법적으로 중앙정보부, 검찰, 경찰, 군검찰, 헌병 등 모든 정보, 수사 기간을 통제하고 지휘하면서 정보력과 수사권을 다 거머쥐게 됩니다. 

 

노태우(실제인물 : 노태우) 하나회의 2인자이며 전두광과 친밀한 관계입니다. 하지만 전두광에 비해서는 조심성이 많고 심지가 약하여 전두광이 리드하고 그 일을 서포트하는 인물로 보여집니다. 

 

 

이태신 (실제 인물 : 장태완 장군) 

공사구분을 하는 원리원칙주의자. 과거 < 제 5 공화국 > 에서는 실제 인물 장태완 소장은 불같이 폭발하는 성격으로 묘사했으나, 이번에는 조용히 분노를 분출하고 절제하는 캐릭터로 연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독님과 초기에 캐릭터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12.12 사태 이후 장태완 장군은 신군부에 체포되어 서빙고에서 45일간 조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19282년 한국증권정산 회상, 1994년 재향군인회장 당선, 2000년 새천년 민주당 입당하여 정계 입문, 16대 전국구 비례대표 국회의원 역임,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 보훈특보를 지냈습니다.

 

장태완 아버지는 아들이 반란군에게 고초를 겪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1980년 4월 과음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또한, 아들 장성호 군(당시 21세)은 그런 상황에서도 학업을 게을리 하지 않고 서울대를 입학했습니다. 아들은 어느날 실종되어 1달 만에 할아버지 산소 근처에서 숨진채 발견 되어 있습니다. 

 

 

 

 

정상호(실제인물 : 정승화 참모총장)

10.26 사건 이후 계엄사령관으로써 혼란해진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애쓰는 인물입니다. 보안사령관 자리를 전두광이 맡도록 하였으나, 권력욕을 강하게 드러내자 이태신 소장을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하면서 국내 균형을 잡도록 합니다. 

 

그는 군사 반란 다음날 바로 해임됩니다. 그리고 서빙고 조사실로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합니다. 1980년 3월 국방부 계엄보통군법회에서 내란방조미수죄로 10년 형을 선고받고 17계급이나 강등당하는 불명예를 안고 이등병으로 전역합니다. 

 

하지만, 특사로 사면 복권되고 1988 군적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다행히 1997년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17년간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었습니다. 1999년 성우회(육해공군 및 해병대 장성 출신 모임)에 당산되어 활동하다가 2002년 사망했습니다. 

 

 

김준엽 (실제인물 : 김진기 헌병감)

윤국본부 헌병감, 이태신과는 박 대통령 서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육국본부에서 처음 만났으며, 이태신이 수도방위 사령관이 된 이후 특전 사령관 공수혁 소장과 함께 반란군들을 진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참군인입니다. 

 

상사에 비해서 상황판단에 매우 빠르고, 유능한 장군으로 묘사됩니다. 같은 시기에 무빙을 촬영 중이라서 오랜 기간 동안 설득하면서 촬영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 또한 12.12 이후 연행되어 모진 고문과 조사를 받았습니다. 이후 군을 떠나 수원에서 농사를 짓다가 광어 양식업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후 영국전략문제 연구소, 일본평화안전보장연구소 등에 있었고, 1987년 11월에는 정병주 특전사령관과 함께 신군부의 만행을 폭로하는 기자회관을 열기도 했다고 합니다. 

노태우 정부에서 제안받은 보직은 모두 거절하고, 90년대 한국토지공사 이사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이 처럼 실제 인물들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역사를 꼭 기억하고 다시 되풀이 되지 않는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의 봄을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은 꼭 관람하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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